요즘 '시간'에 대한 말들을 많이 듣는다.
'내가 경제적 자유를 원하는 이유는 시간을 팔고 싶지 않아서다.'
'결혼 안 할 거면 시간낭비니까 빨리 헤어지고 다른 사람 만나라'
'시간 없으니까 2배속으로 본다'
'내 시간 써가면서 인간관계 유지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다'
'이 운동이 시간대비 효율이 좋아요'
위 이야기들은 최근 3년 전부터 귀에 딱지가 앉을 만큼 들었던 말이다.
시간을 금처럼 여기는 사람들을 보고 예전에 읽었던 책 한 권이 생각났다.
'내이름은 김삼순'에서 보고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책 모모.
놀랍게도 이 책은 아동용 동화이다. 하지만 어릴 때 읽었던 이 책은 지금 생각해보면 어른에게 더 와닿는 책이다.
회색신사는 시간을 절약하기만 하면 이자로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을 더 제공하겠다고 사람들을 유혹한다. 이 말은 회색신사가 구체적인 숫자로 낭비한 시간을 설명해주자 그럴듯하게 들려 불안감과 솔깃함을 제공했다. 거기에 넘어간 사람들은 그때부터 돈만 버는 기계로 살아간다. 정확히는, 일 외에 다른 일들은 시간낭비라고 여긴다. 아이들은 모두 탁아소에 맡겨지고, 탁아소에선 '효율적으로 살 수 있는 법'을 가르친다.
책 속에서 그렇게 살아간 사람들은 결국 말할 수 없는 지루함을 느끼게 되고, 결국 더 차갑게, 더 무미건조하게 변해버려서 회색신사와 다름없이 생존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된다고 한다.
지금 보니 <모모> 속 사람들의 모습은 현재 내가 보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과 크게 다를 것이 없어보인다. 벌써 차갑게 변해버린 회색신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체감할 수 있을 정도다.
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.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고, 시간이 주어지는 한 우리는 할 수 있는 너무나 많은 선택지가 있으니까.
하지만 내가 의미있게 여긴 시간들이 '시간낭비'로 규정지어지는 건 너무 슬프다. 내 소중한 시간을 투자해가면서 했던 일인데, 그것들이 모두 평가절하되는 것 같아서다. 내게는 그것도 가치있는 일인데...! 그렇다면 내가 그 시간에 뭘 대신 했어야 하는 걸까 묻고 싶다. 당신들이 시간 낭비가 아니라고 여기는 일은 그럼 무엇이냐고, 그 시간을 아껴서 생긴 시간으로 최종적으론 무엇을 할거냐고.
사실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일의 가치는 내가 매기는 것이다. 누구에겐 연애가, 근무가, 여행이, 수면이 시간낭비일 수 있다. 인생에서 가치있게 여기는 요소들의 순서에 따라 시간을 어떻게 쓸지가 결정된다. 이것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누구도 남의 시간에 대해 감히 낭비했다는 말을 할 수 없다.
얼마 전까지 나는 '결과만 좋으면 괜찮다'는 생각을 은연중에 품고 있었다. 하지만 현재는 조금 달라졌다. 결과만 좇게 되면 결과를 위해 노력해온 과정이 헛된 일이 되어버린다. 사실은 그 과정이 나를 만들고, 더 일희일비하게 했는데.
시간낭비는 참 결과론적인 이야기다. 사람이기에 선택에 대해 후회할지도 모르고, 생각보다 비싼 대가를 지불할지도? 그렇지만 과정속에서 가져가는 것은 생각보다 꽤 많다. 이 과정을 절대 쓸데없는 것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.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해내가는 과정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한다. 그러지 않으면 목표 달성에 실패하거나 목표를 다 이루었을 때, 어떻게 해야할지 쩔쩔 매고, 시간을 아끼는 것이 목표자체가 되어버린다.
효율보단 어떤 가치를 위해 시간을 쓸지, 그 과정은 어떤 가치가 있을지를 먼저 생각해보았으면 한다. 그렇게 해서 쓴 시간은 더 이상 아깝지 않을 것이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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