사과같지 않은 사과를 받고 되레 화가 더 났던 적이 있다. 자기방어로 똘똘 뭉쳐있는 진정성없는 사과는 안하느니만 못한 사과다.
내가 들은 최악의 사과는 이거다.
'미안해. 근데 우리는 원래 이랬지 않나?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.
화났어? 화풀어ㅎ 암튼 기분나빴음 미안하다고'
중간까지는 글로 말하기 답답해서 통화로 풀어보려했지만,
그 사람은 화 풀리면 전화하라며 통화도 거부했다.
거기까지 보고 나니, 그 사람을 이해시키고 잘 풀어볼 일말의 정 또한 남아있지 않았다.
이 사람과 나는 사고방식이 너무 많이 어긋나서 이젠 돌이킬 수 없어보인다.
사과에는 힘이 있다. 관계를 부드럽게 풀어나갈 가능성을 높이는 힘.
물론 용서를 받지 못할 수도 있고 관계가 나아지지 않을지도 모르지만, 적어도 더 악화되는 것은 막을 수 있다.
하지만 실패한 사과의 경우 역효과가 난다.
화를 더 돋움과 동시에 영원히 멀어지는 것이다.
그렇기 때문에 사과는 잘 해야한다.
당신이 사과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?
대부분 이 불편한 상황을 없애고 관계를 개선하고 싶어서일 것이다.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먼저 내 잘못으로 마음이 상한 것에 대해 진정으로 공감하고 미안해야 한다.
잘못을 모르겠고 미안하지 않다면? 사과하지 말고 직접 부딪혀 이야기를 해보자. 그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면 그때 사과를 하면 된다. 진정한 공감과 미안함 없는 사과는 듣는 사람도 듣자마자 알아차려서 쓰레기같은 말이 된다. 그 차이를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.
사과를 잘 하는 방법은,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. 대부분의 나쁜 사과는 나쁜 말을 덧붙였기 때문에 탄생한다.
나쁜 말 1) 조건형, 억울함 호소
ex.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, 기분 나빴다면
나쁜 말 2) 나만 잘못한 건 아니다
ex. 근데 너도
나쁜 말 3) 용서 강요
ex. 그만하면 됐잖아. 사과했잖아. 화 풀어.
나쁜 말 4) 셀프 상대 판단
ex. 그날이야? 취했어? 너 이런걸로 서운해 할 사람 아니잖아.
이런 말을 습관적으로 덧붙인다면 사과로 인해 상황을 어떻게 바꾸고 싶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.
이미 마음이 상한 상대에겐 사과받을 때 당신의 의도나 잘못의 퍼센트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. 그러니 자기변명으로 들릴 수 있는 말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. 그런 말을 꼭 하고 싶다면 성급히 '미안하다'고 말하지 말고 차분히 이야기하면 된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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